정신자살 by. 도진기 ★★★
마지막 독서일: 2022.12.14
아내의 가출로 삶의 이유를 잃은 남자 길영인이 인터넷에서 발견한 '정신자살'이라는 키워드에 끌려 정신자살연구소를 방문한다. '정신을 살해함으로써 육체를 해방시킨다'라고 하는 독특한 모토의 연구소에서 그는 소장인 이탁오 박사를 만나 정신자살 시술을 받게 되고, 곧이어 미스터리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한편 4년 전 돌연 판사를 그만두게 된 계기가 되는 사건의 주요 인물이었던 이탁오 박사의 소문을 들은 고진이 이 연구소에 접근하면서, 또 한번 두 사람 간의 심리 대결이 벌어진다.
명탐정의 라이벌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흥미롭다. 판사직에서 내려와 아슬아슬한 법망의 줄타기 방식으로 의뢰를 해결하는 고진 변호사와, 이미 교묘하게 살인사건 수사에서 벗어나 고진을 농락한 전적이 있는 이탁오 박사의 대결에 줄거리를 읽는 순간부터 기대가 됐다. 여기에 '정신을 자살시켜 육체의 자살을 막는다'는 독특한 소재와, 길영인과 고진의 시점을 오가며 긴박하게 진행되는 연속 살인사건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책을 읽는 내내 숨겨진 진상이 무엇일지 궁금해하며 즐겁게 읽었고, 마침내 드러난 진상 역시 제법 의외성을 잘 살려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보여지는 결말이 너무 뜬금없이 급발진하는 느낌이라 책을 덮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게 뭐야'였다. 내가 캐치해내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다른 복선도 없이 지나치게 상식에서 벗어난 마무리라서 놀랍다기보단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그동안 잘 쌓아왔던 스토리와 캐릭터성이 한번에 무너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틀림없이 호불호가 갈릴만한 결말이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수작이었던 작품을 평작 이하로 떨어뜨린 굉장히 찝찝한 결말이었다.
법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범인과 무고한 시민의 몸을 융합시킨다는 광기어린 발상 자체는 그것만 떼어놓고 보면 꽤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직전까지 고진 변호사를 상대로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며 어딘지 초월한 천재 박사라는 이미지를 주었던 이탁오 박사의 행동이라기엔 영 위화감이 들었다. 직전까지는 이탁오 박사가 비뚤어진 탐구심으로 인간 심리를 이용한 실험을 하긴 했어도, 심리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서서 인간을 조종하는 지배자 같은 인상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정신나간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돌변한 모습을 보여주니 황당할 수 밖에.
여기에 융합(?) 당사자인 한다미나 신재은 역시 범죄를 저지르긴 했어도 상식적인 선의 양심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처벌에서 도망치기 위해, 혹은 사랑에 눈에 멀어 앞으로 제대로된 삶을 살 수 조차 없는 선택을 한다는 것도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특히 한다미의 경우에는 죄를 숨기고 평온하게 살아가기 위해 그토록 치밀한 설계와 부차적인 살인까지 저질렀는데, 아무리 궁지에 몰렸기로서니 그렇게 비이성적인 선택을 했다는게 좀..
나만의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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