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마리 아기 돼지 by. 애거서 크리스티 ★★★★☆
마지막 독서일: 2021.01.14
유명한 화가 에이머스 크레일이 맥주를 마시고 독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맥주를 건넨 것은 아내인 캐롤라인으로, 여기에 에이머스가 화려한 여성편력으로 유명한 점, 부부 간의 다툼이 잦았다는 증언이 더해져 캐롤라인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캐롤라인은 자신은 무죄이며 에이머스는 자살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감옥에 들어간지 1년 만에 감옥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14년 후, 캐롤라인의 딸 칼라가 에르큘 푸아로를 찾아와 어머니의 무죄를 밝혀달라고 부탁한다. 캐롤라인은 죽기 전 딸인 칼라에게만은 자신이 결백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칼라는 자신의 어머니가 거짓말을 할 리 없으며 사건 이면의 숨겨진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 것. 이미 종결된지 오래된 이 사건에서 푸아로에게 주어진 것은 당시의 사건 관계자 다섯 명의 증언 뿐. 푸아로는 각각의 사건 관계자를 찾아가 증언을 듣고 사건을 재정립하기 시작한다.
과거에 이미 종결된 사건을 사건 관계자의 증언만을 듣고 해결하는, 그야말로 안락의자형 탐정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각 인물들의 증언에서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을 짚어내고 거기서부터 진상을 엮어내는 푸아로의 경이로운 솜씨가 돋보인다. 물적 증거보다는 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사건을 추리해가는 방식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도 이미 비슷하게 활용한 바 있지만, 이미 용의자가 재판을 받고 1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라는 점에서 훨씬 까다로운 전개를 보여준다.
책 대부분이 푸아로가 증언을 듣고 사건을 재조립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자칫 지루하게 흘러갔을 수도 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장기인 섬세한 감정묘사와 복잡하지만 매력적인 인간관계가 작품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관계자들의 각기다른 시선과, 그것을 진술의 미묘한 차이만으로 정확하게 밝혀내는 푸아로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작품 내내 곡예처럼 펼쳐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숨겨져 있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며 마지막에 새로운 진실로 짜맞춰졌을때의 짜릿함은 덤.
드라마틱하게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라 그런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중에서 그렇게 유명한 편은 아니지만, <에르큘 푸아로 시리즈>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봐야할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에이머스와 캐롤라인의 사이가 좋지 않고 당시 내연관계였던 엘사와 새살림을 차릴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사실 에이머스의 여성편력은 작품의 영감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 그가 진정 사랑한 것은 캐롤라인이었다는 반전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 자신들만이 안다는 옛말이 그대로 드러난 스토리가 아닌가 싶다.
이를 깨달은 엘사는 질투와 분노에 못 이겨 에이머스를 살해하고, 비록 의도치는 않았지만 캐롤라인을 범인으로 몰아넣어 처벌도 피하고 나름의 복수(?)도 성공했지만, 결국 가장 원했던 에이머스의 사랑은 마지막까지도 캐롤라인에게 있다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부분.
결말부 푸아로가 이를 지적하자 스스로도 인정하며 에이머스를 죽인 그날 '자신이 죽었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처벌은 피했지만 피폐해진 그녀의 삶이 떠오르며 상당히 진한 여운이 남는 엔딩이었다.
나만의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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