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캡슐 by. 오리하라 이치 ★★★★
마지막 독서일: 2024.02.08
좋아하는 여성에게 보내는 프로포즈, 사람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겠다는 아들의 유서, 상사에게 보내는 안부 인사, 돈을 주지 않으면 사랑하는 여성의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협박 편지, 문학 신인상의 수상 통지서, 가출한 손녀에게 도움을 청하는 노망난 할머니의 편지까지, 각자의 사연을 가진 편지가 우체통에 넣어진지 15년 만에 배달된다. '포스트 캡슐'이라는 기획 아래 15년 만에 도착한 편지는 발신인과 수신인 모두를 예기치 못한 사건에 빠뜨리며 의외의 결과를 불러온다.
작품 대부분에 서술트릭을 활용해서 '서술트릭이 들어간 작품이다'라고 말해도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작가 중 하나인 오리하라 이치. 개인적으로 서술트릭을 정말 좋아해서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 대부분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나온 신간 소식이 무척 반가웠다. 한편으로는 <포스트 캡슐>이라는 제목이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 중 유일하게 어이없을 정도로 실망했던 <타임캡슐>을 떠올리게 해서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내용을 열어보니 간만에 나온 신작답게 오리하라 이치의 매력이 듬뿍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15년 만에 도착한 편지로 인해 수신인과 발신인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의외의 진실이 드러나는 각각의 에피소드와, 각 에피소드의 사건과 그 주인공들이 서로 얽히고 영향을 미치며 하나의 커다란 줄기로 달려가는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작품 중 비슷한 구성을 사용한 <그랜드 맨션>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 작품 역시 재미있게 읽었어서 같은 플롯이라는 것을 알고 더 반가웠던 것 같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보여주는 교묘한 함정과 이를 비틀어내는 반전, 그리고 모든 에피소드가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진실을 드러내는 작가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작품. 가볍고 밝은 엔딩부터 어둡고 진지한 살인사건, 음습 퀴퀴하고 찝찝한 반전까지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것도 좋았다.
작가의 장기인 서술트릭 역시 변함없이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어서, 역대급까지는 아니라도 오리하라 이치에 대한 기대감은 충분히 채워준 소설이 아닐까 싶다. 작중 작가의 대표작인 <도착의 론도>가 재미있는 방식으로 등장하는 것도 작가의 팬으로서 반가웠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서술트릭은 중간중간 계속 등장했던 우체국 배달원이 여자인 사타케 마유미였다는 것. 안좋은 편견이기는 하지만 배달원은 보통 남성일거라는 착각이 더해져 후반부 본격적으로 그녀의 정체가 드러났을때도 곧장 이해가 가지 않아 애를 먹을 정도였다.
다만 앞선 <협박 편지> 에피소드에서는 남편마저 속이고 그가 건네려던 몸값을 가로채는 약삭빠름을 보여줬던 마유미의 캐릭터성이 결말부 반전과 함께 조금 무너진 것이 위화감이 들기는 했다.
프롤로그에서 가볍게 언급되었던 스토커의 러브레터가 결말에서 다시한번 언급되며, 공교로운 우연이 겹쳐 결국 스토커 본인이 스스로의 목을 조른 꼴이 된 것 역시 재미있었는데, 이렇게 사소한 행동들이 돌고돌아 자업자득을 만들어내는 전개는 오리하라 이치가 정말 자주 쓰는 방식이라 반갑기도 했다.
나만의 별점: ★★★★
'본격 미스터리 >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by. 니시자와 야스히코 ★★★ (0) | 2024.02.17 |
---|---|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by.시라이 도모유키 ★★★ (0) | 2024.02.14 |
쌍두의 악마 by. 아리스가와 아리스 ★★★★☆ (0) | 2024.02.13 |
가면무도회 by. 요코미조 세이시 ★★★☆ (1) | 2024.02.10 |
앨리스 죽이기 by. 고바야시 야스미 ★★★★★ (0) | 2024.02.05 |
왓슨력 by. 오야마 세이이치로 ★★★ (0) | 2024.02.03 |
당신에게 보내는 도전장 by. 아쓰카와 다쓰미, 샤센도 유키 ★★★☆ (0) | 2024.01.27 |
절망노트 by. 우타노 쇼고 ★★★★ (0) | 2024.01.26 |